첫 번째 변화는 가구에서 시작됐다.
서울 강남의 원룸, 도쿄 시부야의 1K 아파트, 시드니 CBD의 스튜디오. 풍경은 달라도 그 안의 인물은 닮아 있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이혼한 40대, 홀로 있는 노인이 각자 한 세대를 이룬다. 그리고 이들의 비중이 해마다 놀라운 속도로 늘어난다.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2015년 27%에서 2023년 41.5%까지 올라섰다.7 불과 8년 사이에 14.5%p 상승한 셈이다. 서울만 떼어놓고 봐도 같은 기간 29.5%에서 39.3%까지 뛰었다.7 일본은 이미 38%, 호주는 26%, 홍콩은 20%를 통과했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거의 모든 APAC 선진 경제권에서 1인 가구는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가구 유형이다.
이 숫자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전체 인구가 줄어도 가구 수는 오히려 늘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주택 수요를 결정하는 단위는 '인구'가 아니라 '가구'다. 한국의 총인구는 2020년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들어섰지만, 가구 수는 2050년까지 꾸준히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도시경제학자들이 이런 현상에 붙인 이름이 있다. Shrinking nation, growing city—축소하는 국가, 성장하는 도시.
더 눈여겨볼 대목은 1인 가구의 구성이다. 한국의 20~40세 1인 가구는 대부분 대도시에 몰려 있다. 집을 '사는' 단계를 유예하거나 아예 접어두고 임대시장에 오래 머문다. M&G Investments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 인구 900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임대로 산다.3 한국만의 사정도 아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소유가 아닌 임대 쪽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정리하면 이렇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이들이 임대시장에 오래 머무르며, 대도시로 빨려 들어간다. 수요의 밑그림은 그만큼 또렷하다.
Hines의 2026년 보고서가 제시한 숫자가 인상깊다. 자체 분석한 선진국 시장에서 "전체 가구의 80% 이상이 구매보다 임대 쪽으로 모멘텀을 보인다."5 임대가 '차선'이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 변화는 공급 쪽에서 일어났다.
이 대목에서는 하버드대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의 이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00년대 초, 그는 동료 조지프 기우르코(Joseph Gyourko)와 함께 '주택 공급 탄력성(housing supply elasticity)'이라는 개념으로 부동산 시장의 지도를 새로 그렸다.
공급 탄력성(ε_s)은 개념 자체가 단순하다. 가격이 1% 오를 때 공급이 몇 % 늘어나는지를 재는 지표다. 이 값이 1에 가까우면 가격이 오르는 만큼 공급이 따라붙으며 시장이 알아서 균형을 찾는다. 그런데 수치가 0.3 아래로 떨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요 충격의 70% 이상이 그대로 가격과 임대료로 전이된다. 공급이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APAC 주요 게이트웨이 도시의 탄력성을 뽑아보면 결과가 제법 놀랍다. 도쿄 0.3~0.5, 서울 0.2~0.4, 홍콩 0.1~0.3, 싱가포르 0.3~0.5. 하나같이 구조적으로 비탄력적인 시장이다. 반면 상하이는 0.8~1.2, 뭄바이는 0.6~1.0으로 탄력적인 축에 속한다.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이유는 도시마다 다르되 결과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서울은 2020년 이후 30~50% 뛴 공사비와 이미 역사적 고점을 찍은 토지가, 여기에 취득세·보유세·양도세로 얽힌 세제 부담까지 겹치면서 신규 공급의 경제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도쿄는 이미 고밀도로 굳어버린 토지 위에서 건설비가 발목을 잡고, 홍콩은 토지 자체를 정부가 독점하며 공급 속도를 통제한다. 싱가포르는 계획 당국이 수요에 맞춰 공급을 짜맞추는 체계다. 공급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물리적 제약만도, 규제만도 아니다. 비용·세제·정책이 서로를 누르며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공급은 꿈쩍하지 않는데 수요는 구조적으로 불어난다. 임대료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경제학 교과서의 첫 장에 이미 적혀 있다.
세 번째 변화는 자본의 주체에서 일어나는 중이다.
APAC Living 시장에서 자본을 움직이는 손은 도시마다 다르다. 도쿄는 디벨로퍼의 손, 싱가포르는 공공의 손, 호주는 글로벌 기관의 손에 자본이 놓인다. 서울은 오랫동안 '전세'라는 이름의 사금융이 시장을 움직였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보증금이라는 무이자 대출을 주고받으며 수십 년간 도시의 임대시장을 떠받쳐온 독특한 자본 구조다. 그런데 2022년 이후 이 전세의 틀이 균열을 일으키며 월세 중심의 현금흐름 모델로 빠르게 체질을 바꾸는 중이다.21 자본의 얼굴이 바뀐다는 것은, 시장의 성격 자체가 뒤바뀐다는 뜻이다.
2025년 8월, 서울 마곡동에 낯선 간판이 하나 걸렸다. The Living Company Korea. 호주 최대 주거용 부동산 그룹이 한국 법인을 차린 것이다.9 두 달 앞선 7월에는 세계 1위 임대주택 운영사 Greystar가—운용자산 790억 달러에 전 세계 110만 세대를 굴리는 회사가—서울에 사무소를 열었다.8 Morgan Stanley와 KKR, Hines 역시 수년째 한국 시장을 공공연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이 따로 움직이다가 같은 결론에 가 닿은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공략하는 진입점이다. 한국 시장 자체의 개방이 아니라, 국내 기관 자본이 주저하는 사이 비워진 '공백'이 이들의 타깃이다.
한국은 가장 두드러진 사례일 뿐, 비슷한 장면은 APAC 전역에서 되풀이된다. 호주에서는 BTR(Build-to-Rent)이 한때의 틈새 상품에서 주류 기관 자산군으로 올라섰고, 일본 멀티패밀리는 글로벌 코어 전략의 '인컴 앵커'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Colliers 집계에 따르면 APAC에 몰리는 자본 모집 규모는 2024년 대비 130% 이상 늘었고, 전 세계 신규 자본의 11%가 APAC을 향하고 있다. 크로스보더 자본의 비중은 2019년 이후 최고치인 33%까지 치솟았다.2
자본은 꾸밈이 없는 지표다. 자본이 대규모로, 꾸준히, 새 지역 법인까지 세우며 움직일 때, 그 배후에는 구조적인 변화가 숨어 있다. 바로 앞서 살펴본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 불균형이다. 그리고 여기에 세 번째 축이 더해진다. 자본의 주인이 바뀐다는 축이다. 이것이 2026년 APAC Living을 '신흥'에서 '핵심'으로 옮겨놓는 마지막 퍼즐이다.